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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환 탈북 외교관 나이 이만갑 아내 딸 통일교육원장 고향 김일성 통역

by 와이페이모어 2025. 6. 1.

고영환 탈북 외교관 나이 이만갑 아내 딸 통일교육원장 고향 김일성 통역

고영환 탈북 외교관 나이 이만갑 아내 딸 통일교육원장 고향 김일성 통역

 

6월 1일에 방송되는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이하 ‘이만갑’)에서는 고영환을 비롯 탈북 외교관 4인방이 파헤치는 김정은의 속사정을 들어봅니다.

오늘은 고영환 탈북 외교관 나이 이만갑 아내 딸 통일교육원장 고향 김일성 통역 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영환 탈북 외교관 나이 이만갑 아내 딸 통일교육원장 고향 김일성 통역

이만갑 고영환 탈북 외교관 나이 아내 딸 통일교육원장 고향 김일성 통역

탈북민과 함께하는 대한민국 유일무이 버라이어티 ‘이제 만나러 갑니다’는 700회를 맞이하여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 조합인 탈북 엘리트 외교관 4인방과 함께합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무려 김일성의 불어 통역을 담당했던 주 콩고 북한 참사관 출신 ‘고영환’.

 

다음으로 김정은과 수차례 대면한 주 쿠바 북한 참사관 출신 ‘이일규’와 주 쿠웨이트 북한 대사 대리 출신이자 김정은 금고지기 노동당 39호 전일춘 실장의 사위인 ‘류현우’가 함께합니다.

 

마지막으로 주 베트남 북한 3등 서기관 출신인 ‘한진명’까지 출연해 기대를 더하죠.

 

이날 방송에서는 ‘적대적 두 국가론’을 주장한 김정은의 속내를 탈북 외교관의 시선으로 조명해 봅니다.

 

2023년 말, 한반도를 충격에 빠트린 김정은 정권의 발표가 있었는데. 바로 남한을 완전한 적국으로 규정한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놓은 것.

 

 

근 몇 년간, 김정은은 선조 김일성의 유훈인 ‘통일’을 저버리고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부터 이산가족 면회소까지 폭파하며 ‘남한 지우기’에 나서는 등 과격한 행보를 보였기에 그 이면에는 어떠한 의도가 숨겨져 있을지 귀추가 주목.

 

 

이어 북한의 핫이슈인 ‘김씨 일가의 4대 세습 여부’에 대해서도 살펴봅니다.

 

최근 김정은의 딸 김주애는 각종 고위급 행사, 그 중에서도 특히 군 관련 활동에 얼굴을 자주 내비치며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데.

 

게다가 지난 4월에 참석했던 화성지구 살림집 준공식에서 김주애는 매우 이례적인 행동을 선보였다고.

 

바로, 예전의 수줍고 어리숙하던 모습과 달리 북한 주민과 직접 포옹하고 귓속말을 나누는 등 성숙한 후계자의 모습을 보인 것.

 

이를 두고 탈북 외교관들은 김주애의 후계자 여부에 대해 치열한 설전을 펼쳤는데. 고영환 참사는 잦은 언론 노출로 예상하자면 김주애가 김정은의 후계자일 확률이 높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세 외교관은 “김정은이 김주애를 동반하는 것은 선전용일 뿐”이라 일축하며 반박했다는 후문.

 

 

마지막으로, 탈북 외교관 4인방은 ‘김정은과 트럼프의 네 번째 만남’을 주제로 논의.

 

트럼프는 재집권 후 김정은을 ‘핵 파워(Nuclear Power)’라고 지칭하며 북한에 계속해서 러브콜을 보내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는데. 이에 따라 북미정상회담의 성사 여부는 국제 사회 초미의 관심사가 된 상황.

 

그런데 ‘이 두 정상의 만남이 곧 성사되는 게 아니냐’는 세간의 의견과 달리, 탈북 외교관들은 전혀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고 전해져 관심이 집중.

 

바로 러-우 전쟁을 기점으로 러시아와 끈끈한 혈맹을 맺고 있는 북한에게 미국과의 정상회담은 시기상조라는 것인데. 추후 북미 관계에서 우리나라가 패싱 당할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외교적 자세는 무엇인지 이날 북한 외교 최고 전문가들을 통해 날카로운 조언을 들어봅니다.

 

 

탈북 외교관 4인방이 파헤치는 김정은의 속사정은 6월 1일 일요일 밤 10시 40분에 방송되는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700회에서 확인할 수 있죠.

 

 

고영환 탈북 외교관 나이 이만갑 아내 딸 통일교육원장 고향 김일성 통역

고영환 나이는 1953년 7월 14일 (71세)

 

고향은 자강도 강계시 서산리

 

 

본관은 제주 고씨

 

가족은 아버지 고필용 (1919년생), 어머니 문기섭 (1923년생), 형 고방남, 고영철, 남동생 고영송, 누나 고춘희, 여동생 고명희.

아내 김연옥, 딸 고은정, 아들 고경림은 북한 가족.

 

 

아내 김재숙, 자녀 1남 1녀은 남한 가족입니다.

 

학력은 평양외국어학원 (불어과 / 졸업), 평양외국어대학 (프랑스어문학 / 학사)

 

경력은

북한 정무원 외교부 동아프리카담당 보조지도원

주 자이르 북한 대사관 3등서기관

정무원 외교부 동아프리카담당 지도원

정무원 외교부 중부아프리카담당과장

주 자이르 북한 대사관 참사관

주 콩고민주공화국 북한 대사관 참사관

통일준비위원회 외교안보분과 위원

한국관광대학교 겸임교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

통일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통일부장관 특별보좌역

 

고영환은 북한의 전직 외교관, 대한민국의 공직자. 2024년부터 국립통일교육원 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1953년에 북한 자강도 강계시에서 태어나 외교관이 된 후 김일성의 통역을 맡아 승승장구하다가, 김씨 일가에 관한 실언(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처형 영상을 본 직후 "우리 조선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인데..."라고 발언)으로 인해 귀국 지시를 받자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잠적 후에, 1991년에 홀로 대한민국으로 탈북했다고.

 

북한에 있었을 때는 정무원 외무성에서 과장을 역임하고 아프리카 지역의 외교관을 지냈다고 합니다.

 

탈북한 이후에는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부원장을 지냈죠.

 

 

원래 없던 직책이었는데, 2016년 직제 개편을 시행하면서 부원장직이 만들어져서 초대 부원장으로 취임.

 

 

정년퇴직 후 국가안보전략연구원과 국방부 산하 한국군사문제연구원(KIMA) 객원 연구위원이며 한국관광대학교 겸임 교수로 재직 중.

 

은퇴 이후 연구원 현직일 때보다 활발하게 방송에 출연.

 

2021년 개편 이후 채널A 예능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고정 출연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2023년에 통일부장관 자문기구인 통일미래기획위원회에 초빙되었으며, 이듬해인 2024년에 국립통일교육원 원장에 임명.

 

 

고영환은 자강도 강계시 서산리(이북5도위원회의 행정구역상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영동)에서 조선로동당 간부급 직책을 맡고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휴전 직후 아버지의 인사 이동으로 개성시로 이사하여 주로 자란 곳은 개성.

 

인민학교(한국의 국민학교)[9] 졸업 즈음에 아버지의 권유로, 그리고 외교관이 되면 외국에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남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외교관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당의 간부 자제들만 다닐 수 있는 평양외국어혁명학원(한국의 중고등학교를 합쳐놓은 외고와 비슷하다) 불어과에 전국에서 모인 4,000명 중 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80명에 들어 합격.

 

당시나 현재나 평양외국어학원은 부상급(차관급) 이상 토대만 지원이 가능했는데 아버지가 차관급으로 대우 받는 개성시 인민위원회장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평양외국어 학원에 다니던 시절에 갑산파 숙청 사건이 벌어지는데, 고위급 자제들이 모여있던 학교였던만큼 자신의 같은 반 친구들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 가는 모습을 교실에서 직접 목격했다고 합니다.

 

 

고급 소련제 승용차에 양복 입은 남자 둘이 학생을 한 명씩 데려갔는데, 어디 온천이나 바다로 놀러갔나 했지만 보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 그 때가 되어서야 숙청임을 알아차렸다고.

 

 

그렇게 2년여 간 불어과 학급 12명 중 5명이 차례로 사라졌다고 하네요.

 

쾌도난마에서 이 일화를 밝혔는데, 울지 않았냐는 박종진의 질문에 울게 되면 자신도 동조하는 것이므로 잔뜩 쫄아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고 회상.

 

졸업 후에 1972년 평양외국어대학 불어과에 진학.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게스트로 자주 등장하는 강명도씨가 같은 과 6년 후배이며,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의 범인 김현희가 같은 대학 일본어과를 졸업.

 

평양외국어대학에서 괜찮은 성적으로 5년 과정을 마치고 1977년 졸업하였다고.

 

1979년부터 북한 정무원 외교부 동아프리카 담당 보조 지도원으로 첫 외교관 생활을 시작.

 

처음 근무했을 때만 해도 김일성의 열렬한 전사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남북통일은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였다고.

 

 

그러나 점차 외교관 생활을 하다 보니 북한 정권의 실상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었고 그토록 미워했던 한국 외교관도 같은 동포로서 생각하며 적대감이 많이 누그러지고 남한의 경제 발전을 느끼게 되면서 고영환은 점차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프랑스어 통역을 3년 8개월간 하면서 특별히 김일성에게 프랑스어 실력을 칭찬받고 표창을 받았다고 합니다.

 

김일성의 포상이 나오자 당시 외무상이 김일성이 직접 하사한 인삼을 외무성 직원들 앞에서 내려 표창했다고.

 

이 의미는 북한에서 최고의 신분 보증이 되는 접견자가 되는 것으로서, 개인 인사 카드에 김일성의 칭찬과 포상 내용이 가장 첫 페이지에 '모셔'지고 당연히 간부 사업(인사)에서 상급자의 고과 의견 따위는 물을 필요도 없이 요건만 되면 즉시 승진시키는 신분이 된 것.

 

 

그래서 당연히 나이에 비해서 승진이 굉장히 빨랐다고.

 

 

특히나 해외 근무는 외무성에서도 상위 20%의 엘리트가 로동당 입당이 허가되고 상관의 추천과 함께 기혼자에게만 주어지는게 규정임에도 홀로 주 자이르(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 대사관 3등 서기관과 북한 정무원 외무성 아프리카 담당국 지도원 과장, 주 자이르 대사관 1등 서기관을 거쳐 주 콩고 대사관 참사관을 역임하는 등 승진은 다른 동기들보다 빨리 한 편.

 

그 과정에서 외교부장 김영남을 수행하며 아프리카 제 3세계권의 서울올림픽 보이콧 운동 등 여러 가지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북한 체제의 모순성을 계속해서 자각하다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자본주의 경제의 급성장을 보며 체제에 대한 극심한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고영환이 대한민국으로 오게 된 날은 1991년 5월이지만 망명 기자 회견은 그 해 9월에 하였다. 처음에는 가족의 신변 때문에 언론에 발표하지 않고 조용히 살려고 했으나, 안기부 요원이 언론에 발표하자고 설득해서 결국 4개월 후 망명을 대외적으로 발표하였다고.

 

 

공개 활동을 하는 북한 출신 외교관으로는 고영환이 최초였다고 합니다.

 

망명 초기에는 심적 고생이 대단히 많았다고.

 

북한 특성상 망명한 외교관의 친족들은 당연히 수용소로 보내지는데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매우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외교관이 됐을 때 가장 옆에서 기뻐해주었던 어머니는 수용소에 끌려간 후 사망했는데 이를 듣고 한참을 오열했다고 하며 지금도 어머니 생각이 나면 눈물이 난다고.

 

 

그래도 주위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한 박태준 회장 등의 응원을 받으면서 힘을 내고 1993년 2월 15일 7살 연하의 의상 디자이너 김재숙 씨와 결혼하면서 점차 한국 사회에 동화되어 갔다고.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 574회에 '북한 외교관 1호 망명 사건'으로 그의 망명 스토리가 상세히 소개되었었죠.

 

고영환은 영화 모가디슈(2021) 리뷰를 하기도 했는데 재밌고 감명 깊게 보았지만 영화와 실제는 조금 차이가 난다고 했죠.

 

고영환은 소말리아 정부에게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지 말라고 선전하기 위해 이미 모가디슈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1990년대는 이미 남북 국력 차이가 기울어져서 더 이상 외교전을 벌이던 시기가 아니고 1990년대는 북한 외교의 중심이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 대미외교로 선회했기 때문.

 

 

고영환 앞으로도 평화를 위해 좋은 활동 많이 해주길

 

고영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