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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 나이 프로필 고향 기념관 재단 생가 제자 셀럽병사

by 와이페이모어 2025. 5. 27.

이태석 신부 나이 프로필 고향 기념관 재단 생가 제자 셀럽병사

이태석 신부 나이 프로필 고향 기념관 재단 생가 제자 셀럽병사

 

이번주 KBS 2TV `셀럽병사의 비밀`에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편이 방송되는데요.

예수의 가르침처럼 사랑으로 살다 간 그의 인생을 다시금 조명해 화제입니다.

오늘은 이태석 신부 나이 프로필 고향 기념관 재단 생가 제자 셀럽병사 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태석 신부 나이 프로필 고향 기념관 재단 생가 제자 셀럽병사

셀럽병사 이태석 신부 나이 프로필 고향 기념관 재단 생가 제자

오는 27일 화요일 오후 8시 30분 KBS 2TV에서 방송되는 '셀럽병사의 비밀'에서는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가톨릭 교회 살레시오회의 수도자 겸 신부 이태석 신부의 인생을 조명.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 남수단 오지인 톤즈에서 선교사로 구호, 의료, 교육, 사목활동에 헌신적 봉사를 하며 현지인들을 감화시켰는데요.

 

 

수단 현지의 애칭으로 세례명 요한의 영어식 표기인 존(John)과 성씨 리(Lee)의 합성어인 '쫄리' 또는 '파더 존 리'로 불린 이태석 요한 신부의 발자취를 따라가 봅니다.

 

이태석 신부는 부산에서 10남매 중 아홉 번째로 태어나났는데요.

 

초2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의 삯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해,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81학번으로 입학, 1987년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해 의사 면허를 취득.

 

그는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신부의 꿈을 품고 전역 후,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해 2001년 6월 24일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주례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신부가 된 이태석은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지로 알려진 오랜 내전으로 폐허가 된 '톤즈'로 파견을 자청했는데요.

 

그는 이곳에서 가톨릭 선교활동을 펼치며 말라리아와 콜레라로 고통받는 주민들, 그리고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했고 병원까지 찾아오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척박한 오지마을을 순회하며 진료를 이어갔죠.

 

그의 병원이 점차 알려지면서 많은 환자들이 모여들자 원주민들과 함께 벽돌을 만들어 병원을 확장.

 

오염된 물로 콜레라가 들끓자 여러 곳에 우물을 파 식수난을 해결하고 농경지를 일구고 학교를 세워 원주민 교육에 힘썼습니다.

 

전쟁으로 상처받은 원주민들에게 치료 목적으로 음악을 가르쳐 브라스밴드를 구성하기도 했는데요.

 

그의 밴드는 수단 남부에서 유명세를 얻었으며 정부 행사에도 초청받아 연주했죠.

 

그러나, 이태석은 2008년 11월, 휴가차 귀국해서 받은 건강검진 결과, 대장암 4기라는 충격적인 판정을 받았는데요.

 

그는 말기 암 선고를 받고도 톤즈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해 주변 사람들이 뜯어말리느냐 고생했다고.

 

담당 의사에 따르면, 그는 말기암 선고를 받자마자 본인의 암 판정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톤즈에서 우물 파다 왔어요. 마저 다 해야 하는데..."라며 앞으로의 봉사활동을 계속하지 못할 것을 걱정했다죠.

 

그의 암은 이미 간으로 전이된 상태로 항암치료를 마친 뒤 건강을 회복하려 했지만, 병세가 나아지지 않아 2010년 1월 14일 "Everything is good(모든 날이 좋았습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향년 47세의 나이로 선종.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고 톤즈를 비롯한 많은 현지 주민들은 이태석 신부를 애도하는 가두행진을 벌였는데요.

 

워낙에 시국이 불안한 곳이라 시위나 행진 같은 집단행동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음에도 군인이나 민병대원 누구도 훼방하지 않았다고.

 

 

그들도 이태석 신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슬픔과 충격을 줬을 것.

 

이태석 신부 사망 후 그가 지은 학교 제자들 다수가 한국에서 의학과 공학을 배워 정식 의사가 되고 공학도가 되어 남수단으로 귀국해 현지에서 병원을 개원하는 등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이렇듯, 이태석 신부가 남긴 선한 영향력은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신부님의 죽음을 믿지 못하던 톤즈의 밴드부원들은 한국에서 보내온 그의 장례식 비디오를 본 후, 그를 보내주기로 결심하고 그가 평소에 가르쳐줬던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라는 곡을 부르며 그를 추모했죠.

 

특히 '사랑해' 노래 중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노랫말이 이태석 신부가 세상에 없는 현실과 맞아떨어지며 가슴 뭉클함을 선사.

 

 

MC 이찬원은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땅, 내전으로 굶주림과 질병이 드리운 수단의 남쪽 톤즈에서, 예수의 가르침처럼 가장 낮은 자세로 가장 높고 훌륭한 삶을 살다 간 이태석 신부의 일생에 울먹이며 눈물을 흘렸죠.

 

불모지 톤즈에서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며 희망을 노래한 수단의 슈바이처 '셀럽병사의 비밀' 제21화 '이태석 요한 신부' 편은 오는 5월 27일(화) 오후 8시 30분 KBS 2TV에서 방송됩니다.

 

 

셀럽병사 이태석 신부 나이 프로필 고향 기념관 재단 생가 제자

이태석 신부 나이는 1962년 10월 17일(음력), 살아있다면 62세입니다.

 

사망은 2010년 1월 14일 (향년 47세, 서울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고향은 부산광역시 서구 해양로22번길 12,

 

본관은 흥양 이씨.

 

묘소는 전라남도 담양군 월산면 광암리 57-1 광주대교구 천주교공원묘역 살레시오회 성직자 묘역.

 

학력은 천마국민학교 (졸업), 부산대신중학교 (졸업), 경남고등학교 (졸업),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의학 / 학사),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 / 학사), 이탈리아 로마 살레시오대학교 (신학 / 석사).

 

병역은 대한민국 육군 제12보병사단 대위 전역 (군의관).

 

 

가족은 아버지 이봉하(1925년 이후~1970년), 어머니 신명남(1926년~2024년 9월 16일) 슬하에 10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났죠.

 

 

종교는 가톨릭, 세례명은 세례자 요한.

 

직업은 가톨릭 신부이자 의사.

 

별명 쫄리, 남수단의 돈 보스코, 수단의 슈바이처, 한국의 슈바이처.

 

 

소속 살레시오회입니다.

 

 

이태석은 의사이자 가톨릭 교회 살레시오회의 수도자 겸 신부인데요.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수단(現 남수단) 톤즈(Tonj)에 선교사제로 파견되어 구호, 의료, 교육, 사목활동에 힘썼습니다.

 

현지인들을 진심으로 감화시킨 헌신적인 봉사 덕에 가톨릭은 물론이고 타 종교인들과 무종교인들에게도 큰 존경을 받죠.

 

수단 현지에서 부르는 애칭은 세례명 요한의 영어식 표기인 존(John)과 성씨 리(Lee)의 합성어인 '쫄리'.

 

 

보통 사람보다는 늦은 시작이었지만 그의 신앙과 덕행은 남달랐는데요.

 

사제 수품 직후 아프리카 케냐로 건너갔다가 얼마 안 되어 더 위험하고 어려운 지역인, 20년 동안 내전이 계속되었던 수단(현 남수단)으로 건너가 의료활동을 시작.

 

마을에서 이태석 신부만 가진 '사치품'이 있었는데요. 다름 아닌 전등과 냉장고.

 

 

백신을 비롯한 약물을 보관하기 위해 냉장고만큼은 꼭 필요했기에 집광판을 사 와 지붕에 직접 설치해서 발전을 하고 냉장고를 돌렸는데요.

 

남는 전기는 해만 지면 암흑이라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하거나 겨우 촛불이나 켜던 아이들의 야간 학습을 위한 조명에 있는 대로 털어 주었죠.

 

투병 중에도 자선 공연도 하고 각 지역의 성당을 직접 찾아가서 봉사활동과 지원을 호소하였지만, 결국 암이 간으로 전이되어 2010년 1월 14일 새벽 5시 35분, 향년 47세로 사망.

 

나중에 남수단을 취재한 <울지마 톤즈: 그 후 이야기>라는 책자에서 말라리아로 다 죽어가는 현지인 환자를 본 한국인 의사가 "이태석 신부님 마지막 모습이 바로 저랬습니다..."

 

 

병명은 다르지만 삐쩍 마른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했다고 회고하는 게 나오죠.

 

임종을 지켜본 수녀에 따르면 사망 몇 시간 전부터 의식이 희미해져서 손 하나도 제대로 못 움직였다고.

 

그러다가 갑자기 "돈 보스코!"라고 외쳤는데 돈 보스코는 자신이 속해 있는 살레시오 수도회의 창립자이자 수호성인.

 

사망 직전 곁을 지키고 있던 수도회 수사들에게 '어젯 밤 꿈에서 돈 보스코가 나를 축복했습니다'라는 말을 했다는 일화도 있죠.

 

수녀는 이태석 신부에게 "돈 보스코 성인이 앞에 보이시냐"고 물었고, 이태석 신부는 고개를 약하게 끄덕였다고.

 

그 다음 손을 들어 모여 있던 살레시오 수도회 수도자들에게 강복을 해준 다음, 유언인 "Everything is good"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신은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 천주교공원묘역 살레시오회 성직자 구역에 매장되었으며, 그 후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에 복원된 생가와 그 옆에는 이태석 신부 기념관이 세워졌죠.

 

 

사단법인 부산사람이태석기념사업회가 2011년에, 2012년엔 사단법인 이태석사랑나눔(현 이태석 재단)이 출범해 고인의 뜻을 이어 왕성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데요.

 

전자는 그의 이름을 딴 '이태석 봉사상'을 시상하고 있으며 2021년 11번째 수상자를 배출. 시상식은 고인의 기일을 전후로 한다고.

 

이태석 신부의 형 이태영 신부(마리요셉,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1960~2019, 1989년 수품)는 이태석 신부 사후에 만들어진 '이태석사랑나눔재단'의 이사장을 맡았는데요.

 

 

현재는 이태영 신부의 뒤를 이어 <울지마 톤즈> 시리즈와 영화 <부활>로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여러차례 다룬 바 있는 구수환 감독이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사랑으로 살다 간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님~

 

천국에서 편안히 지내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