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나이 키 프로필 사망 동치미 노래 아들 윤여정 자녀 정선희 재산
가수 조영남이 동치미에 나와 또 입담을 자랑했습니다.
김영옥도 못말리는 조영남.
오늘은 조영남 나이 키 프로필 사망 동치미 노래 아들 윤여정 자녀 정선희 재산 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조영남 나이 키 프로필 사망 동치미 노래 아들 윤여정 자녀 정선희 재산
동치미 조영남 나이 키 프로필 사망 노래 아들 윤여정 자녀 정선희 재산
동치미에서 배우 김영옥이 팔순을 맞이한 가수 조영남을 향해 “부탁하는데, 장가만 가지 마”라고 정곡을 찌른 매콤한(?) 일침을 날립니다.
오는 3일 방송되는 MBN ‘동치미’에서는 ‘내 인생 폭싹 속았수다-노년에도 혼자 살 수 있다?’를 주제로, “노년에 배우자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노년에 자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두고 팽팽한 입장 차를 벌이죠.
공개된 영상에서 MC 에녹이 “저는 아직 혼자 살고 있지 않느냐”고 운을 뗀 뒤 “40대 중반의 나이인데, 혼자 살 만하다”고 말하자, 스튜디오에선 너 나 할 것 없이 에녹을 향해 뼈(?)를 때리는 팩폭을 날려 웃음을 선사.
김현숙, 이성미, 유인경 등 ‘동치미’ 인생 선배들은 “젊으니까 그렇다” “애가 뭘 아니” “뭘 안다고” 등 팩폭 3연타를 날렸고, 에녹은 쏟아지는 충고에 진땀을 빼며 당황해 폭소케 하기도.
이어 MC 이현이는 “신혼 때 남편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았는데, 아이를 딱 낳는 순간 남편의 숨소리도 싫어졌다”는 충격적인 폭로(?)로 주변을 깜짝 놀래켰죠.
또 이현이는 “남편도 걱정할 정도였다. ‘이렇게 나를 좋아하는데 아이를 낳아도 괜찮겠느냐’ ‘애나 볼 수 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니, 아이가 무조건 1순위가 되더라. 아이들을 위해 인생도 다 바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아내들은 자식들 보며 혼자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이에 MC 김용만은 “남편이 잠시 순위가 밀려나는 건 이해하지만, 숨소리조차 싫어졌다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속상함을 드러내 웃음을 안기죠.
또 이날 게스트로 등장한 조영남은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 좁아지게 마련이다. 80대가 되면서 다들 여자친구도 없어진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늘어난 추세다. 내가 여복이 있다”고 자랑하며 여전한 인기를 과시.
이 모습을 바라보던 김영옥은 세 번째 결혼을 꿈꾸는 조영남을 향해 “그 ‘미친 짓’을 여든에? 부탁하는데, 장가만 가지 마”라고 매콤한 일침을 가해 폭소를 자아냅니다.
더불어 이날 방송에선 ‘무대 위 영원한 소년’ 가수 조영남의 팔순잔치 현장도 전격 공개.
연예계 마당발답게 송창식부터 김세환, 김홍신, 이홍렬, 남궁옥분, 전유성, 김학래, 이경실, 정선희, 김지선 등 다양한 분야의 반가운 얼굴들이 참석, 조영남 스타일의 매운맛(?) 축사로 이목을 집중시키죠.
“혹시라도 (팔순을) 못 넘길 줄 알았다”는 남궁옥분에 이어, 정선희는 “저를 자꾸만 여자로 보신다”는 깜짝 발언을, 김학래는 “제대로 된 여자가 별로 없다”고 말해 웃음을 안깁니다.
여기에 80번째 생일파티 준비 과정부터 본 행사 현장까지 생생하게 그려질 예정. 조영남이 직접 그린 고액의 그림 등 그의 애장품으로 진행되는 럭키 드로우 이벤트도 예고돼 기대감을 높이죠.
한편, 김용만X이현이X에녹 3MC 체제로 새롭게 변화한 속풀이 힐링 토크쇼 ‘동치미’는 매주 토요일 밤 11시 방송됩니다.
조영남 나이 키 프로필 사망 동치미 노래 아들 윤여정 자녀 정선희 재산
조영남 나이는 1945년 5월 13일생 79세입니다.



황해도 평산군 출신.
키는 167cm, O형
학력은 강문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성악 62 중퇴,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 명예학사, 트리니티 신학대학교 신학 학사.
가족은 아버지 조승철 어머니 김정신
누나, 형 6명, 남동생 조영수(1947년생)
장남 조얼(1975년생), 차남 조늘(1982년생), 딸 조은지가 있습니다.
조얼과 조늘은 전처 윤여정 소생이며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조영남은 1968년 말 데뷔해 한국 대중음악과 성악을 가요에 접목시켜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사실 본업인 음악 뿐 아니라 작가, 화가, 방송 MC, 라디오 DJ 등 다방면으로 활동해 왔죠.
솔비나 구혜선, 홍서범 등도 종합 예술인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이들보다 앞선 세대 인물로는 그가 원조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황해도 출신이라 분단의 아픔과 지역감정의 대립 등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지역감정으로 갈라서기 시작한 경상도와 전라도의 화합을 담고있는 화개장터라는 곡을 불렀습니다.
조영남 화개장터 동영상 ▼
참고로 그는 작곡만 했고 작사는 친구인 김한길 전 문화관광부장관이 했다고.
조영남은 1945년 5월 13일(음력 1945년 4월 2일), 황해도 평산군에서 태어나, 1.4 후퇴의 피난 행렬에 섞여 충청남도 예산군으로 이주했다고 하네요.
중학교 졸업 후 서울로 상경해 용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했다 1963년에 한양대학교를 자퇴하였는데, 자퇴의 이유가 재밌다고.
2013년 10월에 방송된 SBS '좋은 아침'에 조영남은 한양대 성악과 후배 김승일과 함께 출연하여, 한양대를 자퇴한 이유를 설명하며 "2학년이 됐는데 신입생 여자 아이들 중에 정말 예쁜 여자가 들어왔었다.
그 여자가 한양대학교에 오는 걸 매일 몰래 봤다. 걔가 입학한 후로 온 정신은 '그 애와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였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내가 사회를 보면서 걔를 의식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약혼자가 있는 여자였다. 학교에서 그 여자와 내가 데이트 한다는 소문이 났고 약혼자가 날 찾아오기까지 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조영남은 "학교에 퍼진 소문 때문에 자퇴하게 됐다. 다시 공부해서 서울대에 갔고 그 여자는 파혼했다"고 말하기도.
약혼한 여자와 눈이 맞아서 학교에서 잘렸다는 거죠.
조영남은 한 프로그램에서 "약혼한 여자와 눈이 맞은 거였다. 그 때는 내가 전액장학금을 받는 학생이었으니까 그러면 안 되는데 예쁜 걸 어떻게 하냐?"고 되묻기도.
"그래서 자퇴서를 냈다. 이후 공부를 해서 다시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다"고 말했죠.
암튼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조영남.
이후 1964년에 서울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하였는데, 1968년까지 다니다가 서울대 성악과도 이후 자퇴하였다고. 다만, 2000년대 들어 서울대학교 측에서 조영남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죠.
서울대학교 자퇴의 이유에 대해 조영남은 2010년 9월 방송된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서울대 음대를 다니던 중 미8군 오디션을 보고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깜짝 놀랄 만큼 수입이 좋아 더 이상 학교 다닐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해서 자퇴했다”고 밝혔습니다.
딜라일라로 방송에 데뷔했는데,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데뷔하자마자 굉장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고.
조영남 딜라일라 동영상 ▼
본인도 본인 저서나 출연방송에서 본인은 거의 무명 시절은 없었던 편이라 회고하곤 합니다.
1970년대 LP로만 음반을 발매하던 시절에 75,000장을 팔았다고 하니 1990년대 기준이면 밀리언셀러 못지 않은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한 인기 가수인 것.
스타가 되어 돈을 많이 번 뒤에는 본인이 한때의 굶주림에 상업가수로 전향한 것을 후회했는지 동생인 조영수가 성악가가 되길 원하자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었다고 하네요.
1971년, 군생활 도중 알게 된 배우 윤여정과 결혼한 후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주도한 여의도 평화집회에서 성악 쪽 담당자들을 수소문하고 직접 지휘한 후 빌리 그레이엄의 추천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가 신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수로 돌아오면서 활동도 왕성했지만, 집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끝내는 윤여정과도 갈라섰다고.
사실 조영남은 옛날부터 악명높은 바람둥이였는데 결혼하고도 그 버릇을 통 고치지 못했다고.
그런데다가 돈도 한 푼도 벌지 않았는데 오죽하면 쌀독에 쌀이 없던 날이 있던 날보다 많았다고 했을 정도.
그래도 윤여정은 결혼생활동안 조영남에게 헌신적이었고, 1970~80년대 미국에서 두부 구하기가 어렵던 시절 두부를 좋아하던 조영남을 위해 직접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 정도였다고 하죠.
무릎팍도사 윤여정 편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윤여정에게는 이게 엄청난 트라우마.
실제로 관련이 있는 이야기가 나왔는데도 조영남의 'ㅈ'조차도 꺼내지 않았으며, 그 기세등등한 강호동과 유세윤도 몸 둘 바를 모른 채 진행을 했을 정도.
물론, 조영남 본인도 직접 "그녀가 입을 열었다면 조영남이란 사람은 사회에서 매장당했을 것"이라며 잘못을 시인했는데 그래놓고는 나중에는 윤여정이 못생겨서 같이 잘 수 없었다는 망언을 하기도 했죠.
하여간 조영남은 이혼 후에도 정신 없을 정도로 수많은 여자들과 엽색 행각을 벌였으며, 1980년대에는 자주 여성지에 이름이 올라왔습니다.
이혼 후에는 방송에 인생을 올인하여 체험 삶의 현장으로 대표되는 체험&다큐 형태의 방송을 주로 이끌었으며, 2006년부터 2016년 5월 16일까지는 MBC 표준FM의 오후 4시 5분 ~ 저녁 6시 라디오 프로그램 <지금은 라디오 시대> DJ를 맡았습니다.
보조 MC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는데, 미국에서 MC로 성공한 자니 윤을 불러와서 그를 메인 MC로 한 '자니윤 쇼'에 조영남이 보조MC를 맡았는데, 두 사람의 호흡이 너무 잘 맞아서 큰 인기를 끌었었죠.
노년 연예인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이자 재산가.
그가 지금도 계속 거주하고 있는 청담동 고급 빌라는 공시지가만 50억 원 이상, 실거래가는 100억 원이 훨씬 넘는다고 하네요.
사실 그 빌라는 조영남이 아주 오래 전에 구입한 것으로, 구입 당시에는 그리 고가가 아니었으나, 재건축만 2번을 거듭하다 보니 주변 시세와 맞물려 건물 가격이 폭등한 것.
게다가 집값이 너무 비싸다 보니 팔리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소싯적부터 그는 트로트 가수들의 가창력을 비판하기를 좋아했는데, 가창력에 있어서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이 중론.
스탠더드 팝이 유행이었던 시절, 조영남은 미군들이 좋아할 만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로 꼽혔고 당시 미군들에게 American Voice로 선호받던 가수였다고.
'딜라일라'를 비롯한 번안곡이나 팝송 역시 성악을 베이스로 한 쩌렁쩌렁한 성량으로 힘차게 소화했고 그래서 한국의 톰 존스라고 불리웠고 실제로도 그에 손색이 없는 수준.
지금도 조영남과 비슷한 연배이거나 7080세대의 어르신들은 "조영남이가 노래 하나는 참 멋지게 불렀지." 라는 식으로 왕년의 조영남을 팝과 클래식에 뛰어났던 가수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윤여정 이후 배우자는 백은실로 역시 이혼했죠.
수양딸 조은지를 입양하기도 했습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쎄씨봉'에서는 김인권이 그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기도 했죠.
나름 닮은 듯.
지금 이라는 요즘 노래도 인기가 있죠.
악보는 여기
조영남 어떤 식으로든 한 시대를 풍미한 파란 만장한 연예인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재능도 있지만 잘못도 많았고.
아직도 어쩔땐 철이 안든 것 같은 모습도 보이죠.
그게 그의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듯.
세상 사람들이 다 똑같을 수 있나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는 거죠.
남한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되는건데...
앞으론 남의 마음 아프게 하지 말고
활동 잘 하시길.
조영남 앞으로 인생 마무리 잘 하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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